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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밥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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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봄이 왔습니다.
작성자 둘밥맨 (ip:175.213.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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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2-04-01
  • 추천 0 추천하기
  • 조회수 213
봄. 단 한 글자로 온갖 이야기를 털어내고, 신실하게 자신의 길을 좇는 녀석. 여지없이 봄은 왔고 시간은 시기를 넘어 어제와 같은 말들을 쏟고 있습니다. 봄이 온 것처럼 여름이 올 것이고, 그처럼 가을과 다시 겨울이 오겠지요. 다시 겨울은 오겠지만 분명 오겠지만, 아직도 나의 겨울이 끝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 어느 겨울보다 시원했던 바람이 차가워진 것은, 어느 해 겨울보다 따스했던 대지가 얼어붙은 것은 나만의 일일까요? 모두가 따사로이 맞는 햇볕이 그저 눈을 찌르기만하는 것은 누구의 시 때문일까요?
어제와 같이 봄이 왔을 뿐인데, 내일과 같은 오늘인데, 여느 때와 다른 이 시간은 누구의 난안(赧顔)한 시기심 때문일까요?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도 마주할 수가 없습니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것들이 하늘을 굼실거리고 있을 뿐, 나는 귀 기울일 수 없습니다.
소요(逍遙)하는 고목의 옛 이야기도 쉼 없이 재잘대던 바람도 모두 그 자리에 서서 굳은 얼굴로 숨을 쉬질 않습니다. 누군가는 좇지 못할 것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곧 말을 걸어 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 ‘곧’이라는 시간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네. 나는 분명 살아가겠지요. 남루하다거나 찬란한 것과는 별개로 나는 살겠지요. 하지만 그 이유가 없다면, 삶의 주문을 놓치고 날아다니던 곳에서 땅으로 그 보다 더 밑으로 떨어지기만 한다면, 산산이 부서져 살아간다면, 그렇다면 나는 살아가겠지만 그런 나는 살아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렇지 않은 것일까요?
알고 있습니다. 모두 아무런 까닭이 없는 것이란 걸. 이리 볶아대는 봄이 오는 것도, 불현듯 태양이 멈추고 달이 굳은 표정으로 날 꿰뚫는 것도 모두 연유는 없는 것임을 나는 바로 알고 있습니다. 시기는 누구의 의지로 한 철을 보낼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시기는 그리 흐르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네 나는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고 이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잘 알아왔는데도 오늘 나는 이유를 던집니다. 내가 던진 이유란 것은 땅 밑으로 가라 앉아 있기도 하고, 겹겹이 쌓인 지층을 따라 흐르기도 하고, 수 천만 년 전의 기억에 다다르기도 하고 때로는 튕기어 다시 나를 좇기도 합니다. T.S 엘리엇의 잔인한 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봄이 매년 다르듯 나의 봄은 그와 같을 수 없으니 말이지요. 봄은 이리도 다른데, 계절은 다시 돌아오는 것인데, 나는 한 가지를 놓쳤군요.
그래요 봄은 왔습니다. 서낙한 일상을 사는 새들이 대지와 꽃들이 지친 몸을 푸는 때가 왔습니다. 봄은 봄인데 밤마다 겨울을 사는 나는 어드메의 우물을 향해 가야하는 것일까요?
봄은 봄인데 아침마다 입김을 덮는 나는 누구의 장작을 가져야할까요?
아름다운 일입니다. 몽롱한 눈이 영롱한 빛을 좇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어쩌면 웅크리었던 나의 심장이 녹아 봇물처럼 쏟아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봄은 이미 나에게 온 것인지 모릅니다. 콸콸 다 쏟고 흘리고 나면 바다를 만들 수 있을까요? 나는 쉬지 않고 흐를 수 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름다운 것들이 쌓여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봄. 그가 왔습니다. 그녀가 왔습니다.
친애하는 겨울이여 안녕.
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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